티스토리 뷰
목차

저도 처음엔 어릴 때 생활 습관만 잘 잡아두면 나중엔 저절로 굴러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열 살을 넘기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갈등만 늘어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훈육을 하는 건지 싸움을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면서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보다 '언제, 어떻게 놓아줄 것인가'가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자율성을 키우는 훈육, 사춘기 전에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정말 하나하나 가르쳐야 했습니다. 손 씻기, 가방 정리, 정해진 시간에 숙제하기. 제가 옆에서 반복해서 알려줘야 겨우 움직였으니까요. 그때는 그게 맞는 방식이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외부 조절(external regulation), 즉 아이가 아직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을 때 보호자가 대신 구조를 만들어주는 단계를 저는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외부 조절이란, 아이 스스로 행동의 이유와 결과를 내면화하기 전에 부모가 규칙과 환경을 설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 방식이 몇 년 뒤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열한 살, 열두 살이 되어도 저는 습관처럼 "왜 아직도 이게 안 되냐"는 말을 반복했고, 아이는 그 말을 들을수록 오히려 더 굳게 닫혀 갔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아이의 반항이 아니라 제 방식이 시기를 놓친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활 습관을 어릴 때 잡아두면 평생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군 복무 중 매일 새벽에 일어나도 전역 후 이틀이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처럼, 습관은 환경이 바뀌면 함께 흔들립니다. 중요한 건 특정 행동을 반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하는 자기조절능력(self-regulation)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기조절능력이란 외부의 지시 없이도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으로, 이것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부모가 없는 환경에서도 행동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시점부터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제가 결정하는 대신, 기준을 먼저 설명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오늘 숙제랑 게임 중에 순서 어떻게 할 거야?"라는 말 한 마디가 "숙제 먼저 해"보다 훨씬 조용하게 통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선택지를 주는 것만으로 아이의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 초등 저학년: 부모가 구조를 만들고 반복 훈련하는 외부 조절 단계
- 초등 고학년·사춘기 초입: 선택지를 주고 결과를 경험하게 하는 이행 단계
- 사춘기 이후: 기준과 원칙만 유지하고 실행은 아이에게 맡기는 자율 단계
피아제(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 시기는 형식적 조작기(formal operational stage)에 진입하는 단계로, 추상적 사고와 결과 예측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달합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 Piaget's Stages of Cognitive Development). 여기서 형식적 조작기란 아이가 가상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자신의 행동 결과를 스스로 따져볼 수 있게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왜 그걸 못 하냐"는 말만 반복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성장을 부모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분리불안과 책임, 놓아주는 것도 기술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했을 때, 저는 그게 단순히 사춘기 호르몬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불편했던 이유가 아이의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아이 없이는 하루의 리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아이가 문을 닫는 행동 자체가 저를 밀어내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은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분리불안이란 애착 대상과 떨어지는 상황에서 느끼는 과도한 불안으로, 흔히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부모에게도 발생합니다. 아이를 오래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 없이는 못 사는 쪽이 부모가 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춘기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부모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부릅니다. 양가감정이란 하나의 대상을 향해 사랑과 거부, 의존과 독립 같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애교를 부리다가 갑자기 문을 쾅 닫는 행동, 이게 바로 양가감정이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모습입니다. 제 경험상 이걸 이해하고 나니 아이의 행동이 덜 상처로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믿는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는 네가 결정해 봐"라는 한 마디가 "엄마가 아직도 나를 애 취급하네"라는 반감을 줄여줬습니다. 물론 모든 걸 한꺼번에 맡긴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단계적으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신입사원을 처음부터 독립시키지 않고, "한 달 동안 디테일하게 알려드릴게요. 그다음부터는 맡기겠습니다"라고 기한을 정해주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지금은 이 부분만 가르쳐줄게. 잘되면 그다음은 네가 결정해"라고 끝이 보이는 훈육을 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자율성 지지(autonomy support)를 경험한 청소년은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가 높고 부모와의 관계 만족도도 함께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Parenting Adolescents). 여기서 자율성 지지란 부모가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제공하는 양육 방식을 의미합니다. 통제를 줄이는 것이 관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쌓는 방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춘기 아들이 말을 아예 안 들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왜 안 하냐"는 말보다 "이건 네가 결정해봐"라는 말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지시 자체보다 애 취급받는다는 느낌에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어른 대접을 해주는 것, 그게 말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였습니다.
Q. 어릴 때 그렇게 가르쳤는데 생활 습관이 왜 무너질까요?
A. 습관은 환경이 유지될 때만 지속됩니다. 군대에서 2년간 규칙적으로 생활해도 전역 후 이틀이면 돌아오는 것처럼, 외부 조절에만 의존한 습관은 구조가 사라지면 흔들립니다. 그래서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조절능력을 따로 길러줘야 합니다.
Q. 자율성을 주다가 너무 풀어지면 어쩌죠?
A. 자율성을 준다는 게 기준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저는 원칙과 기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의 선택을 아이에게 맡기는 방식을 썼습니다. "이것만 지키면 나머지는 네가 결정해"처럼 자유의 범위를 명확히 정해두면 풀어지지 않습니다.
Q. 사춘기 아이가 방문을 닫고 혼자 있으려 해요. 내버려 둬야 하나요?
A. 방문을 닫는 행동은 독립에 대한 신호이지 부모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갈등이 줄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무시하기보다는 "필요하면 말해"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Q. 훈육을 언제부터 줄여야 하나요?
A. 초등 고학년, 대략 열한 살을 기점으로 방식을 전환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 전까지는 디테일하게 가르치되, 그 이후부터는 기준을 설명하고 실행은 아이에게 넘기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훈육의 양보다 훈육의 목적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역할은 통제자에서 조력자로 이동해야 합니다. 제가 배운 건 통제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권한을 단계적으로 넘겨주는 것이 진짜 훈육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초등 고학년 자녀를 키우고 계시다면, 오늘 한 가지 작은 선택지를 아이에게 넘겨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건 네가 결정해"라는 말 한 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